산토리니의 하얀 골목을 거닐다가 문득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에 앉고 싶어질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죠. 바로 향긋한 커피 한 잔입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부드러운 거품이 올라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만큼 완벽한 순간이 또 있을까요? 오늘은 산토리니에서 즐길 수 있는 ‘그리스 커피(Greek Coffee)’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작은 잔에 담긴 깊은 향과 부드러운 거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알아보아요.

그리스 커피란?
터키 커피와 키프로스, 세르비아, 보스니아와 같은 지역의 커피와 비슷한데, 아주 곱게 간 커피 가루를 찬물과 함께 ‘브리키(briki)’라고 불리는 작은 손잡이 달린 냄비에 넣고 천천히 끓인 후 필터 없이 마시는 커피입니다. 원두 가루를 바로 끓이기 때문에 독특하고 풍부하고 크리미한 맛이 납니다. 다 마시고 나면 잔의 바닥에 커피 찌거기가 남는데, 이것이 바로 그릭 커피의 특징이자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 커피가 수명을 늘려준다고 나타났는데 이는 전 세계 다른 커피에 비해 카페인 함량이 적고 폴리페놀과 항산화제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장수의 섬으로 알려진 이카리아 섬 주민들의 장수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매일 그리스 커피를 마시는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커피의 역사
그리스 커피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은 커피 문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 내에서 널리 퍼진 이 커피 문화는 그리스에도 전해졌고, 이후 그리스인들만의 방식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원래는 '터키커피' 또는 '터키의 것'이라 불리다가 1974년에 터키가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두 나라간의 관계를 긴장시킨 사건을 계기로 터키 커피에서 그리스 커피로 이름을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의 커피문화
그리스 사람들은 커피를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아침 식사부터 밤까지 커피가 빠지지 않죠.
그리고 그들은 커피를 매우 천천히 마십니다. 커피 한 잔을 두 시간 넘게 즐기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그리스 속담에 “Κάθε πράγμα στον καιρό του (카세 프라그마 스톤 케로 투)”이 있는데, 이는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의미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즐기는 삶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빨리 빨리 문화인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모습이지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친구나 지인들에게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건네듯이 그리스 사람들은 “Πάμε για έναν καφέ; (빠메 야 에난 카페?)” ‘커피 한 잔 할까?’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내서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집에서 만드는 그릭 커피
- 브리키로 끓이기
브리키는 좁고 깊은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릭커피를 타는 전용 주전자로 여기에 물(60ml), 커피 가루(1-2티스푼), 설탕(선택)을 넣고 중약불에서 저으며 끓이다가 거품이 올라오면 불을 끕니다. 거품(카이마키)이 풍부 할수록 커피가 맛있게 타졌다고 합니다. - 미세하게 간 커피 가루
그리스 커피는 일반 에스프레소나 필터 커피보다 훨씬 고운 가루로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잔 바닥에 진한 커피 찌꺼기가 마치 전분가루를 가라 앉힌 것 처럼 무겁게 남아있는데 이것을 남겨두고 마십니다. - 천천히 끓이기
급하게 끓이면 맛이 쓰고 거품이 사라지기 때문에, 낮은 불에서 천천히 가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통해 깊고 풍부한 맛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 설탕을 미리 넣어서 끓이기
그리스 사람들의 대부분은 달콤하게 마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설탕을 같이 넣고 끓입니다. 그릭커피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커피에 해당되기 때문에 주문시 항상 아래 세가지로 구분해서 물어봅니다. 이렇게 단맛의 정도를 미리 알고 계신다면 훨씬 더 여러분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가져다 주실꺼예요.

커피 찌꺼지 점술 그리스 커피와 점술
그리스에서는 커피를 다 마신 후 잔 바닥에 남은 커피 가루로 점을 보는 문화가 있습니다. 잔을 뒤집어 커피 찌꺼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생긴 모양을 해석하는데 예를 들면 새 모양은 여행이나 좋은 소식이 오는 징조이고, 원의 고리모양은 사랑의 신호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고 뱀 모양은 경계해야 할 사람이 있거나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장난처럼 재미로 즐기는 전통입니다.

얼죽아를 위한 그리스만의 시원한 커피 : 프라페와 프레도
그릭커피는 오직 따뜻하게만 마십니다.하지만 여름철 산토리니에선 시원한 커피가 더 제격일때가 있지요.
그리스에만 맛보실 수 있는 개성있고 시원한 커피, 프라페와 프레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한겨울에도 시원한 커피만 마시는 분들처럼 여기도 따뜻한 그릭커피보다 프라페와 프레도만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처음 산토리니에와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길거리에 사람들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데 어딜가나 메뉴판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 '아이스라떼'가 없어서 카페 직원에게 도데체 아이스커피가 어떤거냐 물어보고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저의 첫 프레도카푸치노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그리스의 아이스커피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 프라페(Frappe)는 인스턴트 커피, 물, (설탕)을 셰이커로 흔들어 거품 내고 얼음을 넣은 커피이고 보통 가정집에서 많이 만들어 마십니다. 보기에 마치 카푸치노처럼 위에 거품이 있는데 이건 절대 드시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이 거품이 필터 역할을 해주어 안 좋은 것들이 위에 올라가 있다고 여깁니다.
간혹 외국인들이 커피를 다 마시고 이 거품도 같이 먹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많이들 당황해 하지요.

두번째로는 프레도(Fredo)로 에스프레소를 얼음 위에 부은 커피예요.
프레도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어지는데 "프레도 에스프레소"는 그대로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고 잘 섞어 준 후 에 얼음을 추가한 것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보다 약간 더 진한 맛입니다. 그리고 "프레도 카푸치노"가 있는데 프레도에스프레소 위에 머랭처럼 쫀쫀한 우유 거품을 위에 올려주기 때문에 섞어서 마시면 마치 아이스라떼를 마시는 기분이예요. 추가적으로 우유거품 위에 시나몬이나 쵸콜렛 가루를 뿌려달라고 하면 더욱 더 향기롭고 풍미있는 커피를 즐기 실 수 가 있습니다.

산토리니에서 커피 즐기기 : 로컬 카페의 매력
산토리니에는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거의 없고, 이아(Oia)나 피라(Fira)같은 마을이나 해변가 앞에 작고 현지 감성이 가득한 카페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게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은 정말 특별하답니다. 관광객 많은 낮 대신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가면 한적하게 즐길 수 있어요.
커피 주문하실때 간단한 팁도 알려드릴께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옵니다. 그때 "칼리메라(좋은 아침)"나 "야수(안녕)"로 인사 후 "에나 엘리니코 카페 파라칼로(그리스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돼요. 단맛의 정도에서는 "스케토(무설탕)" , "메 메트리오(약간 단맛)", "글리코(달콤한 맛)"으로 말하시면 종업원도 더 반가워하겠지요?. 하지만 영어도 잘 통하니 편하게 주문해 보세요. 커피를 다 마시고 나갈때는 현금을 테이블위에 두고 나오시거나 종업원을 불러 자리에서 결제해주시면 되세요. 그리고 산토리니는 워낙에 외국손님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에 팁이 필수는 아니지만 현지인도 10~30%정도의 팁을 남겨두는 문화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그리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산토리니의 여유로운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하나의 전통입니다. 천천히 끓이고, 천천히 마시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리스 커피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요? 산토리니를 방문한다면 더욱이 아름다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꼭 한 잔의 그리스 커피를 즐겨보세요!
여러분도 산토리니에서 커피를 마신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 주세요. 다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문화와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의 3월 25일: 독립과 신앙이 어우러진 특별한 기념일 (1) | 2025.03.27 |
---|---|
그리스의 봄맞이 전통 팔찌, '마르티스' (2) | 2025.03.20 |
그리스의 클린 먼데이(Καθαρά Δευτέρα): 봄을 여는 시작 (11) | 2025.03.14 |
그리스의 바베큐축제-치크노벰티(Tsiknopempti) (2) | 2025.03.07 |
그리스의 봄을 알리는 카니발축제 -아포크리에스(Apokries) (0) | 2025.03.05 |